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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의 고려말, 왕과 왕의 호위무사 '홍림'. 원의 억압을 받던 고려 말, 친위부대 건룡위의 수장 '홍림'은 대내외적 위기에 놓인 왕을 보필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후사문제를 빌미로 원의 무리한 요구는 계속되고, 정체불명의 자객들이 왕의 목숨을 위협하자, 왕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선택, 엇갈린 운명. 왕의 명령이라면 목숨처럼 따르는 홍림, 왕은 고려의 왕위를 이을 원자를 얻기 위해 홍림에게 왕후와의 대리합궁을 명한다. 충격과 욕망이 엇갈린 그날 밤, 세 사람의 운명은 소용돌이 치기 시작하는데...
>공민왕 관련 이야기
고려말 공민왕의 시대는 내우외환의 난세였음.
북쪽에서는 원의 쇠태로 한족의 반란군인 '홍건적'이 득세를 하여 고려를 침략해왔고 이로 인해 수도 개경까지 함락 당하고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안동까지 파천하는 수모를 겪었다. 남쪽에서는 왜구가 극성을 부려 남해안 전체가 쑥대받이 되었고 수도 개경 근처까지 침략을 해왔다.
내부적으로는 권세족의 횡포와 대기근까지 겹쳐 극도의 혼라스러움이 이어져졌다. 한마디로 헬게이트 수준.
공민왕은 천성적으로 맨탈이 강한 왕이 아니었으며,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진 예술가적 기질의 왕이었다. 이러한 대내외의 정국의 엄청난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 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후일 '흥왕사의 변'을 통해 공민왕의 최측근 세력은 모두 제거되어 졌으며, 1365년 지국히 사랑했던 노국공주마저 출산하다 난산으로 아이와 함께 승하를 하게된다. 이것이 결정타가 되고 공민왕 점점 무너지게되며 말년에는 거의 반 폐인의 상태가 되어버리며 정치 . 행정의 전권이 신돈에게 넘어간다.
공민왕은 성적 측면에서도 방종해져 공민왕 스스로 여장을 하기도 하고 자제위라는 미소년 집단을 뽑아 자신을 시중들게 했다. 나중에는 공민왕이 이들로 하여금 후궁들을 범하게 해놓고 자신은 이것을 감독하거나 감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공민왕의 왕비 중 1명인 정비안씨는 이를 참다 못해 머리를 풀고 자살을 시도했고 공민왕도 이에 질려서 잠시 그만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자제위 소속의 젊은이들은 궁에 갇혀 국왕을 상대해야 했기에 그 대가로 많은 부와 권세를 누렸으며 궁녀들과도 문란하게 행동하여 신하들의 지탄을 받았다.
공민왕은 결구 최만생, 홍륜등의 신하들에 의해 45세 이른 나이에 술에 취에 잠을 자다 칼에 난도당해 처참히 시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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